<p></p><br /><br />어느 날, 평범했던 한 남성의 집에 술에 취한 50대 여성이 찾아왔습니다. <br> <br>같은 빌라에 사는 윗집 여자였습니다. <br> <br>그때까지만 해도 남성은 단순한 취객의 주정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. <br><br>이 여성의 방문이 단란했던 한 가정을 산산조각낼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. <br><br>여성은 이상한 말을 시작했습니다. <br> <br>"이 남자가 지적장애 2급인 내 조카를 성폭행했습니다." <br><br>윗집과 아랫집에 살던 이웃이었을 뿐인데, 도대체 이들에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? <br> <br>아빠의 누명을 벗기기 위한 딸의 힘든 여정은 이때부터 시작됩니다. <br><br>Q1. 성폭행범으로 지목된 아버지는 결국 억울한 옥살이를 했습니다. 그런데 범인은 따로 있었다고요? <br><br>2015년 12월 말, 전남 곡성에서 있었던 일입니다. <br> <br>장애인 성폭행범으로 몰린 50대 김모 씨는 이듬해 구속이 됐고, 1심 재판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습니다. <br><br>[김모 씨 / 성폭행 누명 피해자] <br>"성폭행했냐, 안 했다. 그리고 나는 얼굴도 모른다. 피해자 진술만 믿고 저를 빨리 범죄로 만들어가지고 구속시키는데 집중했지, 그 이면은 한번도 들여다보지 않았죠." <br><br>그런데 알고보니, 당시 18살이었던 지정장애 2급 여성, 정모 씨를 성폭행한 진범은 다름아닌 고모부였습니다. <br> <br>2013년 아버지가 사망하고, 어머니가 보호시설에 맡겨진 뒤 친언니와 함께 고모 집에서 살았는데, <br> <br>40대인 고모부가 10대 조카를 상대로 추악한 범행을 저질렀던 겁니다. <br> <br>그런데 이 사실을 알게 된 고모는 남편을 질책하는 대신, 다른 사람에게 성폭행 혐의를 뒤집어 씌우려는 계획을 세웁니다. <br> <br>인근 휴게소에서 큰 사업을 하며 고급 승용차를 몰고다니던 김 씨가 그 범행대상이 됐습니다. <br> <br>결국 김 씨는 304일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했습니다. <br><br>Q2. 진범이 고모부라는 사실은 어떻게 밝혀지게 된 건가요? <br> <br>진범을 밝혀낸 건 수사기관이 아니라, 김 씨의 둘째 딸이었습니다. <br> <br>아버지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다 <br> <br>2심 재판이 시작된 2017년 여름, "정 씨가 고모 집을 나가 전남 한 마을에서 남성과 살고 있다"는 소식을 접하게 됐는데요, <br> <br>같은해 9월 13일, 수소문 끝에 정 씨, 그리고 정 씨와 함께 살고 있는 남성을 만났습니다. <br> <br>김 씨의 2심 선고가 있기 딱 2주 전이었는데요, 정 씨는 "고모가 김 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하라고 시켰다"면서 "안 그러면 <br>센터를 보내거나 감옥에 집어넣겠다고 협박했다"고 털어놨습니다. <br><br>Q4. 수사기관에서 해야 할 일을 결국 딸이 한 거네요? <br> <br>그렇습니다. <br> <br>마음고생에 유산까지 했다고 합니다. <br> <br>[성폭행 누명 피해자 딸] <br>"2017년 9월 아빠가 보석되기 2주 전에 병원에 갔는데, 임신이었는데 심정지 상태라고 하더라고요. 그 때 바로 수술했죠. <br>(그 때 태아가 몇 주 정도였나?) 5개월이요." <br> <br>경찰에게도 기회는 있었습니다. <br> <br>정 씨가 경찰조사에서 집에서 3번, 모텔에서 2번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는데, 모텔 CCTV만 빨리 확인했다면 진범을 잡을 수도 있었다는 얘기입니다. <br> <br>[당시 수사관] <br>"3개월 지난 시점에 CCTV를 확인해야 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 했고, 삭제가 됐다고 당연히 생각했었고요.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모텔 업주에게 CCTV 저장 기간이 얼마나 되냐고 물으니 1주일이라고 답변을 받았습니다." <br> <br>경찰은 모텔 주인에게 CCTV 저장 기간을 1주일이라고 들었다고 했는데, 김 씨의 딸이 직접 모텔 주인을 만나 받았다는 확인서에는 이 모텔의 CCTV 저장기간이 4개월이라고 돼 있습니다. <br> <br>양측의 주장이 엇갈리는 상황입니다. <br><br>Q5. 얼마 전 무고죄 등으로 넘겨진 고모와 고모부에 대한 법원의 선고가 있었어요. 어떤 결과가 나왔습니까? <br> <br>지난 13일, 이들에 대한 1심 법원의 선고가 있었습니다. <br><br>성폭행 혐의를 뒤집어 씌운 고모와 고모부는 징역 7년과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았는데요, <br> <br>사건을 조작하고 기획한 중심에 고모가 있었다고 보고, 가장 강력한 처벌을 내린 겁니다. <br> <br>무고, 무고교사, 강요, 특수강요, 협박, 모해위증, 명예훼손, 장애인복지법 위반까지 인정됐습니다. <br><br>또 허위진술을 한 정 씨에 대해서도 법원은 징역 8개월에,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. <br><br>Q6. 김 씨 측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진행하고 있다고요? <br><br>2019년 1월, 무죄를 선고받은 뒤 304일 구금에 대한 형사보상금 1억 원은 받았습니다. <br> <br>하지만 김 씨 측은 "제대로 된 사과를 받고 싶다"며 지난해 4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는데요, <br> <br>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 때문에 성폭행 범죄자가 되고, 그 누명을 스스로 벗어야 했던 이번 사건을 취재하면서 살인범으로 지목돼 20년 감옥살이를 한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의 복역자 윤성여 씨가 떠올랐습니다. <br> <br>더는 국가가 지켜주지 못하는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는 일은 없어야 겠습니다. <br> <br>[성폭행 누명 피해자 딸] <br>"경찰은 하는 말이 처음부터 끝까지 매번 그래요. 고의적으로 한 게 아닙니다. 검찰은 유감이다, 하지만 판단은 법원이 했다. 법원은 유감이다…" <br><br>다음달 15일에 선고결과가 나옵니다. <br> <br>억울한 피해자는 없어야겠죠. <br> <br>사건을 보다, 최석호 기자였습니다. <br> <br>bully21@donga.com